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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이야기
조회 : 3518        작성자 : 보륜월     [ kong9030@paran.com ]  
   "21세기의 화두는 … 이다", " … 이 인생의 화두가 되고 있다"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신문이나 뉴스 등에서 보고 듣게 된다. 그런데, 이 '화두'라는 용어는 '야단법석'이나 '이판사판' 등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용어가 원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변질되어 일상용어가 된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화두”라는 용어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불교를 믿지 않거나 불교에 관심없는 사람들이 이 화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이젠 일상용어가 되다시피한 “화두”라는 말에 대해 그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비단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의미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화두이야기를 조심스레 던져 보고자 한다.


  우리가 매체를 통해 듣거나 혹은 무의식적으로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두의 의미는 '풀어가야 할, 또는 해결해야 할 숙제 내지 과제' 정도로 이해된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주된 종단인 조계종은 화두를 참구하는 이른바 간화선(看話禪)을 그 수행방법으로 삼고 있다. 즉, 선방에 있는 스님들은 모두 화두를 하나씩 들고 수행하고 있다. 각자가 지닌 화두의 해결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화두참구를 하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화두는 곧 '해결해야 할 과제'인 셈이고, 이 점에서 아마도 화두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불교적 의미에서 화두는 사실 그 뜻에서부터 해결해야 할 대상이나 방법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화두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話頭”를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말 머리'가 된다. 도대체 '말 머리'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니 ‘마음’이 곧 ‘말의 머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두는 그 자체로는 '마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불교에서 현재 사용하는 화두는 직접적으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게 하는 방편(수단)'1)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을 보게 하는 방편으로는 역대 중국 선사들이 제시해 놓은 1,700개의 공안이 있는데, 좁게는 이 공안을 두고 화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안 중 하나를 예를 들어보면, 한 수행승이 운문 선사에게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 선사는 “마른 똥막대기이니라”라고 답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마른 똥막대기 화두’라 한다. 그런데, 왜 1,700개 공안이 마음을 보게 하는 방편이 될까. 위 공안들은 모두 마음을 본 사람들, 즉 깨달음을 얻는 자가 마음을 직접 가리키고 있는 말이다. 비유컨대, 제자가 스승에게 달을 묻자 이에 스승이 달을 가리키는데,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바로 공안에 해당한다. 달을 가리킬 수 있는 자는 직접 달을 본 자만이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면, 깨달은 자라면 누구나 공안을 만들 자격이 있고, 비단 1,700개의 공안만이 깨달음의 방편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일상용어화된 화두를 살펴보면 그 속에는 답이 없다. 즉, 풀어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만 제시하고 있을 뿐 답이 없다. 또한 따지고 보면, 풀어가야 할 그 과제에 대한 답에는 정답이란 것도 따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무수한 답 혹은 해결책 중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권력자나 힘이 있는 자가, 또는 자기 스스로의 과제에 대해서는 자기 스스로가 무수히 존재할 수 있는  답들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을 정답삼아 현실에 적용해 나갈 뿐이다. 그런데, 불교적 의미에서의 화두에는 위 마른 똥막대기 화두에서 보는 것처럼 그 속에 이미 답이 있다. 다만, 깨닫지 않은 중생의 입장에서 그 답이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답을 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니 화두공부를 의심법이라고 하고, 화두공부의 생명을 이 의심에 둔다.  


  한편, 일상용어화된 화두에 대해서는 그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와 같은 방식은 세간사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과 완전히 동일하다)이 어떠한 수단을 통하든지 결국에는 ‘생각’을 통한 것이다. 즉, 생각의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일반적으로, 생각을 떠난 삶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생각의 틀은 마치 나무가 줄기에서 가지를 뻗어나가고, 다시 가지에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생각 위에 다시 생각을 끊임없이 일으켜 답을 추구해 나간다. 소리와 빛을 좇아 생각을 순차 지어나가는 것이기에 이를 順流라 부른다. 그런데, 화두를 풀어가는 방식은 정반대이다. 즉, 생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가다가 종국에 남게 되는 마지막 한 생각에서 그 한 생각이 일어나는 곳, 즉 마음을 비춰보는 것이다. 마치 가지가 무성한 나무의 가지를 하나씩 쳐 나가다 결국 땅 바로 위 지점에 올라와 있는 나무둥지마저 쳐서 결국에는 나무의 근거가 되는 땅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화두공부는 '回光返照'2)를 해야 하는 공부이고, 順流에 반대되는 逆流에 해당한다. 결국 세간에서 화두로 등장하는 문제를 풀어가거나 해결해 가는 방식은 끊임없이 생각을 일으켜 마음이 외부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고, 선수행자의 화두공부는 생각을 거두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의 빛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 된다. 


  결국 불교적 의미에서 “화두”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마음을 깨닫게 하는 공부방법으로, 깨달은 자가 던져놓은 이미 주어진 답을 의심해 나가는 방식으로 일체 번뇌망상을 지워버리다가, 종국에는 마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답을 이해하게 하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인간의 삶을 한 편의 영화에, 인간의 마음(그는 이 마음을 ‘眞我’라고 불렀다)을 그 영화의 영상을 비춰주는 막에 비유했다. 어떠한 고통이나 슬픔, 기쁨이나 행복도 영화필름 속에 담긴 내용(번뇌를 통해 중생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업보)이 영사기(인연)를 통해 나타나는 허상일 뿐이고, 영화를 비춰주는 막(참된 나)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끊임없이 다른 한 편의 영화를 준비하고 재생하는 무심한 무대의 막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무대의 막의 존재를 모른 채 한 편의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 크나큰 차이가 있음에 틀림없다

 

  


1) 見性卽成佛이니, 마음(성품)을 보면 곧 깨닫게 되는 것이다.


2) 글자를 풀이하면,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추어 본다’는 것이다.


작성일자 : 2009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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